르네상스정의

르네상스란 '재생', '부흥' 을 뜻하는 말로서.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6세기 유럽을 풍미하며 정점에 이르렀던 인간 중심의 미술 경향를 말합니다.

대표작가와 작품으로는
안젤리코 , 보티첼리 , 치마부에 , 지오르지네 , 지오토 , 마르트니 , 마사치오, 티치아노 , 두치오, 우첼로 , 지오바니 , 피에로

여기서 재생, 부활 한다는 의미의 내면에는 고대와 르네상스 사이의 기나긴 기간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르네상스란 말은 16세기 이탈리아의 미술사가였던 바사리의 레나시티에서 유래했습니다. 인간 정신의 회복을 바탕으로 중세의 신중심의 미술에서 인간 중심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했으며, 초자연적인 중세 미술에 반대하여 인간과 자연의 현세적인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사실적인 미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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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리즘미술

매너리즘 미술

"16세기말 대가들의 소묘실력은 정점에 달해 있었고 그 이상의 발전에 대한 의문으로 반고전주의를 지향하기 시작합니다."

대표작가와 작품

엘그레코 , 파르미자니노 , 틴토레토

완벽한 기법의 숙달로 16세기말 사람들은 미술의 발전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정신적 혼란 속에 당시의 젊은 미술가들은 르네상스의 이상인 "조화와 균형:을 거부하고 반고전주의를 지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어안렌즈로 바라보듯이 목을 길게하거나 하여 신체의 일부를 과장하여 신기하고 부자연스러운 효과를 기도했는데, 16세기 초의 이러한 경향의 미술을 매너리즘이라고 합니다.

이미 티치아노 이후부터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하던 것이 틴토레토에 이르러 매너리즘의 획을 긋습니다.

틴토렛토는 충격적이고 극적인 그림을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한편 매너리즘의 1세대 화가로 꼽히는 파르미지아니노의 유미주의도 이와 상통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매너리즘의 기법을 가장 깊이있게 밀고나간 대가는 그리스 출신의 엘그레코였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혹평을 받던중 스페인으로 건너와 인정을 받게 되는데, 엘그레코의 작품들은 이미 바로크적인 역동성을 배태하고 있지만 지극히 정신적으로 흘러서 신비감과 모호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회화세계를 이루었습니다.

같은 시기 독일에는 인쇄술 특히 동판 기술이 발전을 하게되는데, 인쇄술에 의해 각지로 급속히 확산되었으며, 이와 함께 나타난 목판화와 동판화는 서양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돕니다.

대표가 뒤러입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다시 태어난 예술을 독일 토양에 이식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라 생각하고 고전적인 미의 신비를 탐구하는 저술과 작품 제작을 하는 데에 전 생애를 바쳤습니다.

또한 같은 나라의 홀바인은 당시 세부묘사에 빠져있던 북유럽의 미술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인물입니다.

뒤러가 죽고 홀바인이 영국으로 떠나자 독일 미술은 이내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북유럽에는 풍속화라는 미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브뤼겔이라는 작가가 있었는데 주로 다루었던 주제는 북유럽의 환상적인 자연과 농민의 생활, 그리고 사회 비판적인 내용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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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2 13:19 2009/07/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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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개선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중 황제의 훈시부조(312-315년, 로마)

양감은 없어지고 평면에 깊이 새기는 방식의 낮은 부조로 변하였으며, 주변의 인물보다 훨씬 크게 묘사된 황제는 중앙에 정면으로 배치되었습니다.

황제이지만 주변인물과 비슷한 방식으로 묘사해 대상을 보이는 대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부각시키고자 하는 중요성에 따라 크기와 위치를 정하였던 것입니다.

로마 말기에 사실성을 거부하는 것은 바로 특별한 존재를 우상화하기 위하여 택한 방법으로 황제에게 두광까지 씌워서 신성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황제는 보통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절대적이고 영원한 존재이며, 미술은 그렇게 믿도록 설득하는 매개체였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은 기독교 주제가 주를 이루는 중세 미술에 더욱 효과적으로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오벨리스 기단부분(390년, 대리석, 콘스탄티노플의 마차 경기장)

위의 변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황제와 대신은 소위 로얄 박스로 차별화하고, 황제는 한 가운데 제일 크게 위치해 있습니다.

사실적인 요소는 전혀 없어서 모든 사람은 일률적이고, 따라서 개별화 시킬 수 없으며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오로지 크기가 큰 황제뿐입니다

레베카와 엘리에제(비엔나 창세기 필사본 삽화.6세기경, 비엔나 도서관)

사물들은 실제 우리 앞에 있는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특정 의미 전달을 위한 형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창세기 24장 중 레베카와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제가 만나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이 종을 시켜 자기의 고향에 가서 아들 이삭의 신부를 골라오게 하였습니다.

엘리에제는 낙타 열 마리와 함께 길을 떠나 나홀이라는 성에 다다랐습니다.

성에서 나와 물을 긷는 처녀에게 마실 물을 청하니 처녀는 물을 항아리 채 주고 낙타에게도 물을 길어 주었습니다.

엘리에제는 레베카라고 하는 이 처녀를 이삭의 신부로 택하였습니다.

레베카는 오른쪽 위에 그려진 나홀성에서 나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기둥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우물에 이르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반나체로 그려진 샘의 님프가 자기 항아리에서 물을 샘으로 흘려 넣고 있고 물을 기른 레베카는 낙타 열 마리를 데리고 온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을 주고 있습니다.

늘어선 기둥들보다 사람을 크게 그린 것을 보면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실제의 공간감을 나타내는 데 큰 관심이 없음이 분명하며, 연속된 시간에 일어난 레베카의 두 장면을 같은 공간에

그리는 것을 보면 구체적인 시간에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형상들은 특정 시간과 장소를 나타낸 현실의 모습이기 보다 이야기 전달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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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2 13:19 2009/07/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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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고대 미술

<<원시미술>>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미술작품들 중에서 가장 오랜 된것은 구석기 시대, 즉 지금으로부터 약 1만5천년전의 동굴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그려지고 조각된 것들이었다. 그들의 작품창작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술적인 것으로 사료된다. 창에 찔린 동물들을 보면서 동물보다 자신들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공포심을 제거하여 자신있는 사냥을 하려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은 미술속의 형상은 현실적인 것과 똑같은 힘을 같는다고 믿었으므로 다산을 기원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기원전 15,000~10,000 오스트리아)를 만들기도 하였다.


<<고대미술>>

1)이집트 미술 (B.C 3500-500)

기원전 5000년경에 이집트, 인도, 중국 등지에 흐르고 있는 나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인더스, 황해등의 비옥한 유역에서 각기 거창한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선사시대로부터 유사시대로의 생활양식의 전환이 놀라울 정도로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다.
이집트인들의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관념없이 이집트 미술을 이해하기란 힘들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사지의 육체를 떠나 따로 삶은 누린다고 믿었다.
이러한 고대 이집트인의 사고 덕택에 이집트의 미술은 초시간적, 영속적기능을 하게된다. 또한 죽은자를 위한 미술이므로 아름다움보다는 미술작품에 영원성을 담으려했다. 예로 파라오 왕이 죽은후에도 생전과 같은 절대권력의 소유와 승천을 돕기 위한 [피라미드]를 들수있다. 그리고 그들은 명확하고 완전한 묘사를 위해 특징적인 각도와 전형적인 상황을 묘사했는데, 주인은 종보다 큰 점, 좌상의 경우 두손은 무릎위에 놓는 점, 남성의 피부색이 여성보다 검은 점, 모
든 인물이 어떤 기저선상에 놓이는 점 등이 예라 할 수 있다.
3000년간 지속된 이집트 미술은 비교적 정확한 부분묘사와 균형있는 신체비례를 보이는데, 이는 그들의 질서감각과 기하학적 규칙성을 보여준다.


2)메소포타미아 미술

기원전 3500년경에서 3000년에 걸친 기간에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낀 비옥한 땅에서 수메르인들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태동한다. 수메르의 도시국가는 모두가 신의 소유로서 신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었다. 그래서 신을 대신하고 있는 신관이 모든 국가의 행정을 통치하고 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메소포타미아 미술은 신전을 중심으로 한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수메르의 조각은 건축보다 많은 양의 작품을 아직까지 남기고 있는 데 그것이 바로 돌로된 소형 인물상군이다. 수메르의 조각가는 금속이나 나무를 재료로 하여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사실적인 표현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이집트 미술가와 비교하여 훨씬 규칙에 속박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3)그리스 미술 (B.C 7 - 4)

그리스 미술에서는 사물을 보는 시점이 이전의 왜곡된 방식이 아닌 올바른 방식으로 발전하여 이집트 미술에서 보이는 평면성에서 벗어나 공간감을 얻게 되었다. 공간감의 획득은 형상이나 인물 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설득력 있게 전달할수 있도록 하였고, 이것을 그리스 미술의 서술적기능(Narrative function)이라 한다.
그리스 미술을 크게 전기, 후기 헬레니즘으로 나누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전기 그리스미술 (B.C7 - 5)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미술이 극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미술의 서술적기능이 태동한 시기이다. 또한 원시적인 신들에 관한 전설이나 신화에 대하여 의심을 품기 시작함으로서 사물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시기이다. 따라서 기하학, 자연과학, 철학등의 학문이 아울러 발전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미술로 도리아식 신전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파르테논 신전]을 들 수 있다.

후기 그리스미술 (B.C5-4)
페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배하여 정치적 번영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미술가들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을 후기 그리스 미술의 특징으로 들 수 있으며 대표작품으로 갸날픈 기둥에, 곡선이 가미된 기둥머리를 지닌 이오니아 양식으로 건축된 [에렉테움 신전]을 들 수 있다.

헬레니즘 미술 (B.C4-A.D1)
알렉산더 제국하의 미술양식을 말한다. 소아시아와, 인도국경, 이집트까지 영토확장을 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서방의 문화가 혼합되었고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이전의 기둥양식 보다 훨씬 강하고 화려한 인상의 코린트식 건축 양식을 들수 있다.
또한 조화와 균형보다는 제국의 위용에 걸맞는 강렬한 극적효과, 거칠고 인상적인 효과에 주력하였다.
격렬함과 긴장감으로 충만되어진 리시포스의 [라오콘]상은 이러한 특징을 잘 나타낸다. 대표작품으로 사모트라케섬의 [니케상], 밀로의 [비너스]를 들수 있다.

4) 로마 미술

그리스 패권을 둘러싼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헬레니즘 제국과 카르타고의 싸움이 치열할 무렵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작은 마을에서 출발한 로마 공화국이 그리스인들보다 정치력과 군사적으로 우세한 힘을 기르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리스를 정복하기에 이른다. 로마인들의 그리스 세계정복은 평소 그리스 미술에 절대적 동경을 가지고 있던 로마인들에게 그리스의 미술을 단번에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들의 우수한 문화 유산을 바탕으로 로마인들은 국제적 성격을 띤 미술을 전파하게 된다. 그리스와 로마 미술이 매우 유사하게 보이는 것은 로마 시대때 활동하던 미술가들이 대부분 그리스 출신이던가 거기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고, 로마인들은 그리스 시대의 미술품을 복제하거나 수집하였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그리스 미술을 그대로 복제한 것만은 아니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그리스 형식을 변형하였다.


5)비잔틴 미술
4세기로부터 5세기에 걸치는 동안 서로마보다는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의 미술이 상대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리하여 정치적인 몰락을 겪은 서로마보다는 동로마에서, 6세기에 이르러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은 콘스탄티노플에서 그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는 데, 이를 비잔틴 미술이라고 부르고 있다.


<<<중세미술 MIDDLE (A.D 5c - A.D 15c)>>

중세는 초기 500년동안은 전쟁과 약탈, 혼란한 정치가 계속되는 일종의 암흑시기(Dark age)였다. 그리고 예술은 기독교 교리전달의 보조수단이라는 신(神) 중심의 인간관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였으므로 예술에 있어서도 암흑시기였다.
중세는 초기미술과 로마네스크, 유비법 붕괴 이후의 고딕양식으로 분류된다.

1)중세초기
미술은 단지 문맹자들에게 신의 섭리와 교리를 전달하기 위한 보조수단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그들은 신(神)적이고, 영원하며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 바꾸는 데 미술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미술가의 재능은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 이므로 당연히 신에게 바쳐져야 한다고 믿었으므로 이시기의 작품들은 대부분 익명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뚜렷히 통일된 하나의 양식이 나타나지 않은 점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 로마네스크 미술

11세기 후반에 유럽전역에서 일어난 로마네스크 미술은 “교회의 승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전역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으며 정치,경제,사회의 일반이 교회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대 로마의 건축양식과 흡사한 교회가 많이 건축되었으며, 단단하고 육중한 모습의 석조건물로서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전투적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조각이나 회화는 중세초기에 비하여 비교적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우나 여전히 교리전달의 보조수단이므로 교회의 내부장식에 이용되었다.

3)고딕양식 (A.D13c-14c)

12C 말 프랑스 북부에서 발생한 미술양식이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의 세계를 가시화 시킬수 없으므로 인간능력의 것을 충실히 나타내려는 시도(유비법의 붕괴)가 생기면서 원근법, 인체묘사, 형태등에 관심을 쏟아 이후 르네상스 발생의 초석이 된다.
로마네스크의 둥근 아치와는 달리 뾰족한 첨형아치가 특징이다. 또한 로마네스크 교회건축물과는 대비적으로 가느다란 석재기둥 및 유리(스테인드 글라스)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내부가 밝고 넓어지게 된다. 대표적 건물로 프란체스코 교회를 들수있다.

유비법이 붕괴되었고 이후 르네상스의 초석이 된다.
건축물은 첨형아치와 스테인드 글라스가 사용되었다.


4) 르네상스
RENAISSANCE (A.D 1400 - A.D 1600)


르네상스는 부활(復活), 재생을 뜻하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 번영을 꿈꾸며 시작되었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배경을 보면 첫번째, 이탈리아에선 귀족계급과 부유한 부르조아 계급 사이의 구분이 없어졌으며, 두번째, 이탈리아가 서유럽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이 산재하는 등 고전시대에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 번째, 도시의 자부심과 사유재산제가 잘 발달되어 예술에 대한 후원의 기회가 많았다는 것등이다. 중세 봉건영주, 귀족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권리와 능력을 자각한 시민계급의 등장은 현실세계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낳았고, 이는 중세를 지배하던 신중심의 시선을 인간중심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피렌체의 메디치가 처럼 부를 축적한 상인계급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여 미술의 새로운 후견인이 되었다.

초기 르네상스(Quatrocento, 1400년대)
현실적, 객관적 정확성에 치중하였다. 그러나 그림전체의 조화로운 구성에는 아직 소훌하였다. 화면속 대상 개체의 사실적인 묘사에만 주력하였으므로 개체는 날카롭고 명확한 윤곽선으로 도려지게 되었다. 격렬한 동세를 하고 있는 소재들은 고전작품에의 제재를 따온 것으로 파악된다.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을 보면 이러한 아직은 미숙한 르네상스의 미술의 특징을 잘 알수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도나텔로(1386-?)<성지오르지오상>, 보티첼리<비너스의 탄생>을 들수 있다.

전성기 르네상스(Cirquecento, 1500년대)
이성적 규칙을 통한 객관적인 정확성과 조화와 균형이라는 미의 이념이 잘 구현된 황금기다. 다른 어떤 세기보다 많은 천재들이 나타났으며 가장 두각을 나타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이다.

후기 르네상스 (Mannerism, 16c중엽부터 말)
전성기 르네상스 이후의 경향들을 이르는데 흔히 평가절하되어 온 경향이기도 하다. 즉 인위적이고 기교적인 성격이 강하고 형식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전대의 거장들의 기법을 모방했다고 간주되어 창조성에서 의심을 받았다. 전반적인 그림들에서 느겨지는 불안감, 신비감, 몽상적인 분위기, 기괴한 배경, 과정된 인체비례에서 시대정신의 한 면의 표출로 보기도 한다. 특히 파르미지아노(1503-1540), 틴토렛토(1518-1594), 코렛지오(1489-1534), 엘 그렛코등이 대표적인 매너리즘 작가로 꼽히고 있다.
그 대표적인 양식적 특징으로는 인체의 장신화, 차갑고 선명한 색조, 표면처리의 매끈함, 원근법의 과장, 비논리적인 공간배치 및 대가그림의 일부 차용 등을 들수 있다. 반면에 긍정적인 측면을 들수도 있다.
이전 르네상스 양식의 이성적 접근은 미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며, 새롭고 색다른 감성적 시도를 하였다는 점에서 매너리즘은 긍정적이다. 이러한 점은 이후 바로크 미술의 계기가 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파르미지아노의 <목이 긴 성모>와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틴토레토의 <최후의 심판, 만찬>을 들수 있다.
후기 르네상스는 매너리즘으로 불리며 예술적 기교에 치우친 타성적 예술이다.


5) 바로크 BAROQUE(A.D 17C)


1600년부터 1750년 까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카톨릭 국가에서, 르네상스의 이성적 규칙에 의한 지나친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부터 발전한 미술양식을 뜻한다. 바로크는 포르투칼어의 '비뚤어진 진주'라는 뜻으로 르네상스가 지닌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에 비해 장식이 지나치고 과장된 미술양식에 대한 경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혹은 르네상스가 지니고 있는 고전적인 균형, 조화의 세계에 비하여 유동적이고 강렬한 남성적인 감각이 강조되어 붙어진 이름이라 한다.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으로 카라밧지오<야경>, 베르니니<다윗>, 루벤스<루시퍼스의 딸들의 능욕>, 램브란트<자화상> 등을 들 수 있다.

6) 프랑스식 고전주의 CLASSIC IN FRANCE (17C)

17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풍요롭고 강력한 국가였다. 그 결과 예술의 중심지는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파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데카르트의 합리론적 철학의 영향과 루이14세에 의한 정치적, 경제적 안정은 프랑스를 바로크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독자적인 양식을 갖도록 하였다. 대표적인 작가로 니콜라 푸생을 들수 있는데 그의 작품 <사비니 여인들>을 보게 되면, 감상보다는 지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취하였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구도나 형태만이 강조되고, 색채는 아에 뒷전에 밀리게 되었다. 영웅적인 인물들은 일반화 되었으며, 동작은 조각처럼 굳어져 있다. 이들의 묘사는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에서 빌려온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7) 로코코 ROCOCO(A.D 18C)

로코코는 바로크 시대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 받아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건축의 유행을 말한다. 바로크 양식이 수정, 약화 된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로코코는 왕실예술이 아니라 귀족과 부르조아의 예술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희와 쾌락의 추구에 몰두해 있던 루이14세 사후,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귀족계급이 추구한,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 및 유희적이고 변덕스러운 매력을, 그러나 동시에 부드럽고, 내면적인 성격을 가진 사교계 예술을 말하는 것이다. 귀족계급의 주거환경을 장식하기 위해 에로틱한 주제나 아늑함과 감미로움이 추구되었고 개인의 감성적 체험을 표출하는 소품위주로 제작되었다.

8) 신고전주의 NEO CLASSIC(A.D 18C말)

로코코와 후기 바로크에 반발하고 고전고대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함께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나타난 예술양식, 고대적인 모티브를 많이 사용하고 고고학적 정확성을 중시하며 합리주의적 미학에 바탕을 둔다. 신고전주의 예술은 형식의 정연한 통일과 조화, 표현의 명확성, 형식과 내용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며, 특히 미술에서는 엄격하고 균형잡힌 구도와 명확한 윤곽, 입체적인 형태의 완성등이 우선시 된다. 고대에 대한 관심은 18세기 중반에 이루어진 폼페이와 헤리클라네움, 파에스툼등의 고대건축의 발굴과 동방여행에 의한 그리스 문화의 재발견등이 계기가 되었으며 프랑스 혁명 전후 고대에 대한 동경이 사회 전반을 풍미하였다. 프랑스에서의 신고전주의 운동은 로코코 양식의 번잡스러움에 대한 일종의 반발, 루이 14세 시기의 그랜드 매너에 대한 향수, 푸생의 고전주의에 대한 회귀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근대미술>>>


1) 낭만주의 (A.D 19C 초)

간단히 말해 감성적 분위기의 작품들을 발전시켜 나간 형태라 할수 있다.
현실적인 사건을 주제로 다루기도 하고 이성의 규칙과 속박에서 벗어나 느낌에 따른 재현을 하였기 때문에 낭만주의로 불린다. <메뒤사의 뗏목>(1819, 제리코)이라는 작품으로 대표되는 데 사선구두와 명암의 극적대비, 어둠 침침한 단색조를 보인다. 낭만주의는 전시대의 미술들이 버리지 못했던 현상이나 사물의 재현이라는 모방론적 입각을, 에술가의 감정이나 정서의 표현이라는 표현론으로 바꾸게데 그 의미가 있다. 따라서 예술이 다양해지는 계기가 된다.

2) 사실주의 (A.D 19C 중엽)

19C 이전까지는 자연주의로서 사실주의가 정의되어왔다. 그것은 성실하고 정확한 '자연의 모방' 더 나아가 그것의 '완벽한 이상화된 재현'으로서 사실주의 였다. 19C 이르러 사실주의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사실주의 등장 이전의 낭만주의는 그 개념적인 면에서 대조가 된다. 낭만주의는 '감정'이 중요하고 따라서 작가의 상상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결과 낭만주의 회화는 격정적이며 현실을 떠난 이상향을 쫒거나 이국적인 소재등에 깊은 관심을 회화로 표현한다. 표현에 있어서는 색채에 비중을 두고 화려하고 열정적인 화면을 구사한다. 현실을 떠난 상상력을 부추기는 소재는 따라서 시적이며 신화적인 주제를 취했다.
사실주의는 낭만정신에 전적인 반대 표명과 비판을 가한다. 특히 19C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쿠르베,도미에,밀레로 집약할 수 있는데, 이들의 공통관심사는 [현실을 보는 눈] 이라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쿠르베는 '천사를 보여주면 그리겠다'는 공언으로 사실주의의 개념을 대변하며 '상상력'으로 집약되는 낭만주의와는 대조를 보인다. 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소재자체가 대조적인데서 비롯되어서 [사르드나팔르의 죽음] [메뒤즈의 뗏목]은 내용 자체가 극적이며 등장인물
도 격정적인 자세의 불안할 정도의 공간배치가 나타난다. 반면 사실주의는 [돌깨는 사람] [만종]등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정적인 모습과 그들의 현실공간을 재현해서 단순하고 차분한 구성을 나타낸다. 19C는 과학과 기술의 태동 이성주의의 팽배를 부른 계몽주의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실증주의는 경험과 관찰에 입각한 과학적인 지식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시민정신에 평등사상을 고취하는데 역할하였고 민주사상에 이어지는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더 이상 고고한 가식적 주제가 아닌 평범한 삶의 세속성이 주제로 등장하는데 정신적인 역할을 했다.

3) 인상주의 IMPRESSIONISM (A.D 19C 말)

인상주의
인상주의는 빛의 변화에 따른 순간적인 형태의 변화 색의 변화를 포착하려는 미술양식을 말한다. 본대로 그린다는 인상주의 정신은 빛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깊이 없는 사물의 인상을 그린 것이다. 태양광선의 미묘한 조화를 쫓기위해 이들은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튜브형 물감과 접히는 이젤의 발명은 그들의 야외작업을 가능케 해주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광선은 빠른 필치와 붓놀림을 요구하고 빠레뜨에서 색을 섞기 보다는 직접 화폭에서 시각적인 착시효과를 노리며 순색을 이용한 색체분할법(필촉분할법)을 사용하였다. 이와 같은 인상주의가 출현하는데는 사진기의 출현에 따른 재현적인 사실적 묘사가 회화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음을 입증해준다.
대표적인 작가인 모네의 [건초더미] [루앙 대성당][수련]등의 연작에 있어
작품의 대상이 되는 사물들은 태양광선을 위한 부차적인 소재인 것이다. 이 그림은 얼마간의 거리를 유지해야 윤곽과 형태가 드러난다. 화면의 구성도 삼각형구도나 소실점이 한두개로 축약되는 선원근법적이 아닌 대기원근법을 사용한다. 그 효과는 자칫 어수선해보이나 자연스럽고 우연한 느낌의 스냅사진과 같은 연출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화를 환영으로서 인식하기를 그만두고 '평면
성'의 회화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직관에 의한 뉘앙스 이미지의 연출은 곧 추상회화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 것이라 할수 있겠다. 대표적인 작가로 마네, 모네, 르느와르, 드가, 로댕 등을 들 수 있다.

신인상주의(Neo impressionism)
신인상주의는 G.쇠라와 P.시냑으로 중심으로 행해진 점묘주의등의 이론과 수법 및 그 운동을 말한다. 그들은 광학이론과 색채학에 따른 과학적 이론에 기초한 색채분할을 구현하였다.
이들은 인상주의가 사용한 기법을 과학적으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인상주의의 경험주의적 사실주의에 반발하였다. 인상주의가 본능적, 감각적이라면, 신인상주의는 과학적이며 분석적이라 할수 있다.

후기인상주의(Post impressionism)
인상주의의 단계를 거치면서도 그 양식의 한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갖가지의 방향으로 인상주의
를 넘어선 일군의화가들을 가리킨다. 인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독자적으로 해결책을 추구하던 이들 작가군을 인상주의 이후의 세대라는 포괄적인 관점에서 `후기인상주의 화가'라는 명칭을 얻게된다. 이들은 이상주의가 지나치게 순간적인 시각세계에만 사로잡혀 있다고 믿었기에 보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한 미술을 추구해야함을 표방했다. 세잔느, 고갱, 고흐로 대표된다

Posted by 여름아이

2009/07/02 13:19 2009/07/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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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현대미술>>>

1) 야수파 (A.D 20C 초)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회화 운동으로 수년간 유사한 테크닉에 관심을 보였던 화가들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미술운동이다.
이 운동은 순수 색채의 고양에 주력했다.이 새로운 화법은 1899년, 그룹에서 주도적 인물이었던 마티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야수파라는 명칭은 당시의 비평가 루이 복셀이 1905년 가을 마르케의 15세기풍의 청동조각을 가리켜 마치 "야수의 우리 속에 갇혀있는 도나텔로 같다"라고 평한데서 유래되었다. 이 운동의 동인은 귀스타프 모로의 문하생이었던 마티스, 마르케, 루오, 앙리 샤를르 망갱, 샤를르카무엥 그리고 장 퓌이등과 '샤토'로부터 블라맹크와 앙드레 드랭, 그리고 프리츠, 브라크, 뒤피의 그룹이 융합된 것이었으며 네덜란드 화가 반동겐도 참여 했다. 그들은 고호, 고갱, 신인상주의, 세잔느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 작품들의 특징은 강렬한 순수 색채에 있었으며 색채는 때로는 세잔느처럼 공간 구성에도 사용했지만 대부분 감정 및 장식적 효과를 위해 임의적으로 사용했다.

2) 입체파 (CUBISM A.D 1900 - 1914)

1900년부터 1914년까지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혁신운동을 말한다.
1908년 마티스가 브라크의「에스타프 풍경」이란 연작을 평하면서 '조그만 입체 덩어리'라고 말한데서 유래되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함으로써 급격하게 발전한 이 운동은 일반적으로 세잔느풍의 입체주의,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잇다. 입체파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의 전통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다채로운 색채를 쓴 순간적인 현실 묘사를 지양하고, 야수파의 주정적(主情的) 인 표현을 폐기한 대신 시점(視點)을 복수화하여 색 도 녹색과 황토색만으로 한정 시켰으며, 자연의 여러 가지 형태를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 사물의 존재성을 이차원의 타블로로 구축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피카소, 브라크등이 이 운동의 중심이었고 그 밖에 몽파르나스에서 화면에 밝은 색채와 다이나믹한 율동을 도입했던 F. 레제와 R. 들로네가 있고, 화면의 구성원리를 추구하여 추상예술의 길을 열었던 쿠프카와, 비용, 뒤샹등이 있다. 입체파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맞았으나, 그 성과는 그 후의 미술, 디자인, 건축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3) 표현주의 (EXPRESSIONISM A.D 1911 - 1920)

표현주의는 야수파, 초기의 입체파, 인상주의, 그리고 의식적으로 자연의 모방을 거부한 다른 여러 화가들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 비평가들이 1911년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1911년 마르크와 러시아 출신 칸딘스키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절대 순수를 표현하고자 함으로써 절대주의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표현주의는 독일을 풍미하게 되었다. 청기사 그룹의 미술 가들은 더욱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을 제작했고 후배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4) 미래파 (FUTURISM)

미래파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위예술 운동을 일컫는다. 이 운동은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가 효시인데, 마리네티는 기존의 낡은 예술을 모두 부정하고 기계 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다이내믹한 미를 창조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자극되어 이듬해 2월 카를로 카라, 옴베르토 보치오니, 지노 세베리니, 루이지 루솔로, 쟈코모 발라의 5인의 화가가 연명으로 미래주의 화가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미술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미래주의의 커다란 공적은 기계가 지닌 차가운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조형 예술의 주제로까지 높였다는 것과 스피드감이나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에 시간의 요소들을 도입하려고 시도한데 있다.
이 유파가 뛰어난 조형작품을 낳았다고 할 수 없지만, 현대에 있어서 예술의 소재에 대해 새로운 문제제기를 한 의의는 크다.

5) 다다이즘 (DADAISM)

다다이즘은 1915~22년경 스위스, 독일, 프랑스등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반문명, 반합리적인 예술운동을 일컫는다.
제1차 세계대전을 낳게 했던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 이 운동의 근본 정신이었다. 이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또는 전후에 세계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독일에서는 반전운동과 코뮤니즘에 결합된 베를린 다다가 1919년에 결성되었다. 미국에서는 1912년경부터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이 만 레이와 함께 뉴욕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뉴욕 다다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적인 경향으로는 소위 레디메이드의 오브제 또는 움직이는 오브제, 콜라주 또는 앗 상블라주로 통하는 메르츠 빌트등이 시도되었던 점이다. 기계적, 성적인 이미지의 사용도 특색이다. 이들 수법은 다다의 강렬한 가치 부정적 관념과 함께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60년대 예술 등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다.

6) 추상 표현주의 (ABSTACT EXPRESSIONISM )


일반적으로 1940년대와 50년대에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미국 회화사상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회화의 한 양식이다. 본래 추상 표현주의라는 용어는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에 대해서 사용했던 말로, 미국의 평론가 알프레드 바가 1929년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칸딘스키의 초기작품에 대해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을 썼었다.
이 용어가 부적당하다는 견해도 있어서 비평가가 해롤드 고젠버그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서구 근대미술의 복합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야수파, 표현주의, 다다이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한 계보와 인상주의, 입체파, 기하학적 추상의 계보를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
전통적인 추상은 구상 회화의 경우처럼 인간, 사물, 풍경등을 표현 대상으로 삼지 않지만 삼각형이나 원 따위, 선이나 면에 의해 생성되는 형상을 갖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것은 현대 회화의 한 특성으로 화면은 원근감을 잃고 평면화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라운드와 전경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는 구상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간에 지시성과 방향성을 거부한다.

7) 미니멀 아트 (MINIMAL ART)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최소한의 조형 수단으로 제작했던 회화나 조각을 가리킨다. 여기서 최소한이란 일루전의 극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은 회화의 감동, 마티에르의 풍부함 내지 자기 표현은 곧 예술이라는 신화를 기본으로 하는 종래의 예술 개념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경향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엘즈워드 캘리, 프랭크 스텔라, 도널드 주드, 케네드 놀런드, 잭 영거맨, 래리 푼즈, 모리스 루이스 등을 들 수 있다.


8) 팝 아트 (POP ART)

196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 발달하여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구상 회화의 한 경향이다. '팝'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포플러(popular)'의 약자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일상 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제재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1950년대 초기의 미국 화단을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다. 미국의 팝 아트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다. 미국 팝 아트의 선배 작가로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를 들 수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흔히 발견되는 일상적인 이미지나 물체를 미술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 다.
팝 아트의 작가들은 일상의 이미지를 인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기호나 기호체계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앤디 워홀, 로히 리히텐스타인등은 사회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 -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의 얼굴,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 -을 작품 속에 도입함으로써 기초 체계와 그들 자신의 테마를 겹쳐서 표현하고 있다.

9) 극사실주의 (HYPER REALISM)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회화와 조각을 일컫는다.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특징으로 한다.주관을 적극 배제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데 주로 의미없는 장소, 친구, 가족등이 대상으로 취급된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사실주의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팝 아트처럼 평상의 생활 즉 우리의 눈앞에 늘 있는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팝 아트와는 달리 그것은 극히 억제된 것으로써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다만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 다룰 뿐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척 클로즈, 하워드 캐노비츠, 맬컴 몰리, 필립 펄 스타인, 시드니 틸림등의 작가가 있다.

10)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

포스트 모더니즘은 지난 20세기에 걸쳐 서구의 문화와 예술, 삶과 사고를 지배해온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 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기 모더니즘은 하나의 통일된 사조나 운동은 아니지만, 그 중심적 동기는 모더니즘을 통해 수립된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엄격한 구분, 예술의 각 장르간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이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건축 비평가들이었는데 이는 1960년대까지 유행하던 엄격한 사각형 형태의 양식에 대한 반발로 나온 건축물에 대해 쓴 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포스트 모던'적 경향이 분화되지 않은 과거의 예술을 소생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시대, 다른 문화로
부터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는 예술은 모두 '포스트 모던'의 자격을 얻는다.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가들의 또 다른 주된 특징은 모더니즘 문화와 사고 방식이 세워놓은 엄격한 지배의 틀을 거부하는데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소통이 불가능한 정치, 문화, 전문화의 영역을 깨뜨리고, 삶과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예술에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끌여 들여 비판적으로 다룬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아직은 확정된 일관성 있는 체계는 아니며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욕망에 의해 촉발된 회의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이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의 폐허를 헤치고 나가며, 모더니즘의 부정이라는 가시적인 대안을 세우려 노력한다.

Posted by 여름아이

2009/07/02 13:19 2009/07/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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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

1. 고대(古代)

1.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은 대체로 요서, 만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에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부터이며,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를 거치는 사이에 민족의 기틀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자연물에 영혼이 깃들여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 사상에서 자연숭배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정 동물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신앙을 바탕으로 예술 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특히 토기는 표면에 색채를 발라서 갈거나, 점·선·원과 같은 단순한 기하학적무늬를 압각(押刻)하였다. 기교적으로는 세련된 형태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부터 농경생활이 시작되었다. 농경 도구나 토기의 제작이외에 원시적인 수공업 생산도 이루어졌다. 신석기 시대의 미술품으로는 우선 '빗살무늬토기'를 들
수 있다. 약간 배가 부른 V자 모양의 토기 표면에 평행으로 사선을 그어서 장식을 하였는데, 선의 방향을 줄에 따라서 엇갈리게 하기도 하였다. 가지런한 선은 서로 대칭을 이루고 통일된 조화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토기의 무늬는 단순히 미적인 것이 아니라 주술적 의미가 강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이 시대의 미술품은 주로 흙으로 빚어 구운 얼굴 모습이나동물의 모양을 새긴 조각품, 조개 껍데기 가면, 조가비로 만든치레걸이, 짐승의 뼈나 이빨로 만든 장신구 등이 있었다.

3. 철기 시대
청동기를 사용하고 농사가 발달하면서 평등했던 부족사회는 무너지고, 사유 재산이 축적되고 계급이 발생하면서 예술이 함께 발전하였다.
이 시기의 예술은 종교 및 정치적 요구와 밀착되어 있었다. 그것은 당시 제사장이나 군장들이 사용하였던 칼, 거울, 방패등의 청동제품이나 토제품, 바위 그림등에 반영되어 있다. 또 지배층의 무덤인 돌널무덤등에서 출토된 청동제 의기들은 말이나 호랑이, 사슴, 사람 손 모양등을 사실적으로 조각하거나 기하학 무늬를 정교하게 새겨 놓았다. 이들은 주술적 의미를 가진것으로, 어떤 의식을 행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흙으로 빚은 짐승이나 사람 모양의 토우(土偶) 역시 장식으로서의 용도 외에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바위면을 쪼아새긴 바위 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활기에 찬 생활상을 보여주고있다.
이 시대 미술품으로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암각화(岩刻畵)이다. 울산의 반구대 바위 그림에는 거북, 사슴,호랑이, 새 등의 동물과 작살이 꽂힌 고래, 그물에 걸린 동물, 우리안의 동물 등 여러 가지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사냥과 물고기잡이의 성공과 풍성한 수확을 비는 염원의 표현으로 보인다.



2. 삼국시대 (三國時代)

삼국시대에는 또한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가 전래되어 우리나라의 미술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특히 불교와 도교가 이 시대미술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불교의 발전과 함께 사상적 내용이 풍부해지고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높은 미의 감각을 엿볼 수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1. 고구려 시대
고구려는 19대 광개토대왕 시대에 만주 통구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강력한 국가를 형성하였다. 광대한 지리적 풍토와 외세의 영향을 받아 길러진 늠름하고도 분방하며 용맹스러운 고구려인의 기상은 그대로 미술에 반영되어 어느 나라의 미술보다도 힘과 정열이 넘쳤다.
고구려의 고분에는 돌무지 무덤과 굴식 돌방 무덤이 있다. 초기에는 주로 돌무지 무덤이 만들어졌으나 점차 굴식 돌방 무덤이주류를 이루었다. 돌무지 무덤으로는 장군총이 유명한데, 계단식으로 화강암을7층으로 쌓아올렸다. 굴식 돌방 무덤 내부에는 벽화가 있기도 하여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굴식 돌방 무덤은흙으로 덮은 봉토 내부에 굴식 돌방이 있는 것으로 쌍영총, 무용총,강서 고분등이 유명하다. 여기에는 풍속도, 수렵도, 무용도,사신도등이 그려져 있어 고구려인의 강건하고 남성적인 기질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무용총의 수렵도는 이러한 사실을 잘 입증해 준다.
그림의 주제는 주로 영생사상을 반영해 주는 죽은 사람의 생활기록이 가장 많다. 선이 굵고 강직하며 주제를 상징적이고 박력있게 다루어 대담하고 웅혼한 고구려인의 대륙적 기상을보여준다.
고구려 미술의 특색은 회화 못지않게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 (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을 비롯하여 불상들의 나부끼는 옷자락이나 화염문등에도 잘 나타나 있다.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 (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은 두꺼운 법의를 입어 몸이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신비하면서도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다. 공예는 통구와 평양 지방에서 나온 기와와 벽돌에 새겨진 장식 무늬에서 힘찬 고구려인의 기상과 솜씨를 알 수 있다.

2. 백제 시대
백제는 부여족의 일파가 한반도의 서남부로 이동하여 옛 삼한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백제의 미술은 북방적인 성격을 가진 원래의 전통에 중국과의 해상교통이 발달되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고구려의 영향에서 벗어나 높은 문화 수준을 유지하였다. 불교미술과 중국의 남조 문화를 흡수하여 온화하고 우아하며 향토적인 색채의 아름다운 미술을 발전시켰다. 백제의 미술은 매우 부드럽고 모나지 않으며 인간미가 넘치고 세련되었다. 이러한 특색은 5세기부터 7세기 중엽까지의 고분벽화,불상, 와당을 비롯한 공예품, 탑등의 미술 전반에 걸쳐 볼 수 있다.
백제의 회화는 능산리고분(陵山理古墳)의 비운문(飛雲文)과연화문(蓮華文)에서 볼 수 있듯이 부드럽고 완만한 움직임의느낌을 자아낸다. 백제의 회화는 6세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회화에 영향을미친다.
이렇게 부드럽고 인간미가 넘치는 백제 미술의 특징은 불상에서도 드러난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양식적인 면에서 외래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들의 얼굴은 복스럽고 밝은 웃음으로 가득차 있어 '백제의 미소'라 불리운다. 부여 군수리 절터에서 발견된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과 말기의 대표작 금동관세음보살상(金銅觀世音菩薩像)은 그 기법이 고졸(古拙)하며 백제의 온화함에 중국 남북조의 영향이 가미되어 있다.
공주 송산리의 무령왕릉은 무령왕에 대한 기록인 지석과 함께 금제관식, 무기, 그릇, 구리 거울 등 많은 껴묻거리가 발견되어 당시의발전된 공예 미술을 보여준다. 최근에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백제 금동 대향로도 도교와 불교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 훌륭한 공예품이다.
건축에 있어서는 오늘날 전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백제의 공장들이 신라의 황룡사 9층탑과 일본의 법륭사, 사천왕사, 법륜사등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 건축에서 백제시대 절의 건축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석탑으로는 목조탑의 건축 양식을 모방한 초기 양식의 익산미륵사지 석탑과, 균형이 잡힌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고 있는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이 있다. 미륵사지 탑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석탑으로서 9층이며, 우리나라 탑 건축의 원류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3. 신라 시대
한반도의 남동부를 차지한 신라는 비교적 평화롭고 안정된 지역적조건 밑에서 독자적인 미술문화를 이루었다. 신라의 미술은 조화있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신라의 미술은 중국의 남조 문화와 고구려, 백제등과 접촉하면서 화려하고 다양한 문화를 이룩하였다. 특히 5세기 후반에 전래된 불교의 영향으로 더욱 화려하고 독특한종교문화를 이룩하였으며 고분의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들에서 당시의 뛰어난 공예 예술을 엿볼 수 있다. 신라의 미술은 전체적으로 보면 이웃했던 고구려나 백제의 미술과는 달리 엄격하고 추상적이며 사변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신라의 회화는 경주의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발굴되기까지는 거의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고분들에서 출토된 천마도(天馬圖),기마인물도(騎馬人物圖), 서조도(瑞鳥圖), 우마도(牛馬圖)등을통해서 우리는 신라 회화의 뛰어남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그림들은 모두 화원의 작품이기보다는 공장에 의한 공예화였다.
불교 미술은 삼국 중에서 신라가 가장 늦게 시작하였으나, 이미6세기 후반에는 특유의 전통을 확립하였다. 7세기에 들어서면서 신라의 불상은 삼화령미륵삼존석불(三化嶺彌勒三尊石佛)이나 황룡사지 출토의금동보살두(金銅菩薩頭)에서 처럼 밝은 표정을 보이지만 몸의비례나 옷의 처리등에는 여전히 추상성이 감돌고 있다.
신라 미술의 일반적인 경향은 대개가 매우 정교하고 호화로우며 또 간혹 현대적인 감각을 풍겨주기도 한다. 금속 공예나 유리 공예와는 대조적으로 토기는 다소 조방하고 거칠며 문양은 기하학적이거나 추상적이다. 그러나 기마 인물형 토기에서 볼 수 있듯이 조형성이 뛰어난 특성도 보여준다. 이 밖에도 삼국시대에는 가야도 높은 수준의 미술을 발전시켰음이 금속공예나 이형토기(異形土器)등을 통해 확인된다. 고령지산동에서 출토된 금관이나 기마인물형토기 등을 예로 봐도 이를확인할 수 있다.



4. 통일신라시대의 미술

(1)통일신라
①고유의 전통 문화에 당나라의 문화를 흡수, 소화하여 우리 나라 미술사상 황금기를 이룩하였다.
②불교는 신라의 호국 사상과 일치되어, 불교 중심의 미술이 발달하였다.
③섬세하고 화려하며, 독자적인 정교한 양식을 확립했다.
④사찰과 석탑 등 불교와 관련된 조형품이 많이 제작되었으며, 특히 불국사와 석굴암은 조형상의 구성미가 뛰어난 걸작이다.
⑤금관이나 장신구 등의 정교한 금속 공예와 함께, 상원사와 봉덕사의 범종들은 조형미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2)조각
①석굴암 본존상: 석굴암 중앙에 안치되어 있는 본존상은 높이가 3m이고, 우리 나라 석조 불상 중 으뜸가는 것으로 세계의 자랑거리이다. 이 본존상을 중심으로 주위의 돌 벽에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와 보살, 11관음 등을 부조로 조각하여 배열하였다. 전실(前室)에는 금강역사상과 천왕(天王)이 역시 부조로 힘차게 표현되어 있다. 그 솜씨는 극히 우아하고 날카로우며, 알맞은 양감과 부드러운 질감이 조화된 신라 문화의 대표적인 미술품이다. 석굴암은 중국의 윈강 석굴의 영향을 받아서 화강암으로 축조되었다.
②금동 약사여래 입상(金銅藥師如來立像): 성덕왕 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순금 여래 좌상과 더불어 금속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③아미타 여래 입상: 경주 갑산사에 있으며, 높이는 1.8m이다.

(3)건축
①불국사: 경덕왕 10년에 김대성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목조 건물은 임진왜란 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와 함께 돌로 만든 것만 볼 수 있어 옛 모습을 찾을 수는 없으나, 다보탑과 석가탑, 여러 가람들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안정되고 세련된 통일 신라의 미술 역량을 잘 나타내고 있다.
②석굴암: 불국사와 함께 건립된 인공 석굴로, 석가여래좌상, 관음보살상, 나한상, 인왕상 등이 있다.
③다보탑: 곡선과 직선을 잘 조화시켜 구성했으며, 화려한 변화와 안정성이 있는, 통일 신라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④석가탑: 다보탑의 부드러운 곡선미에 대조를 이룬 직선적인 탑으로, 단순하고 힘차며 안정성이 있는, 통일 신라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인데, 사리탑으로 일명 "무영탑"이라고도 한다.
⑤그밖에 화엄사 사리탑, 감은사 3층 석탑 등이 있다.


3. 발해시대 (渤海時代)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으로 이루어졌던 발해에서도 회화, 조각,공예, 건축등 다방면의 미술이 발전했다. 발해 시대의 지상 건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유적의 발굴로 그웅장함이 확인된다.
발해의 자기는 대체로 무게가 가볍고 광택이 있는데, 그 종류나크기, 형태, 색깔등이 매우 다양하다. 특히 발해의 자기는 같은 시대 여러 나라의 도자기 공예보다 독특하게 발전되었으며, 당에 수출하기도 했다. 발해의 미술은 대체로 고구려 미술의 전통을 계승하고 당나라문화의 영향을 수용하여 그 나름의 미술을 발전시켰다고 볼 수있으나, 그에 대한 구체적인 규명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4. 고려시대 (渤海時代)

신라의 미술을 계승한 고려의 미술은 불교미술의 발달과 송나라미술의 영향으로 섬세하고 정교한 귀족적인 미술문화를 남겼다. 이 시기에도 여전히 불교가 융성하였고 이에 따라 각 방면의 불교미술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거란·여진·몽고등 북방 민족들의 잇단 침략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문화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고려가 북송(北宋), 남송(南宋), 원(元), 명(明)등 중국의왕조들과 문화적 교류를 빈번히 하면서 미술 양식을 수용하여 자체의 미술을 발전시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려시대의 모든 미술이 시종 완벽을 지향했던 것으로 단언하기는 어려울 지 모르나 이 시대 미술의 주된 경향은 역시 귀족적 문화를구현하는데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 시대에는 도자기, 칠기, 금속등의 공예가 발달하였고, 특히 상감청자의 독특한 기법은 세계적인 가치를 지니며, 회화 역시 다양한 기법과 양식의 불화가 제작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삼국시대, 통일신라 시대와 비교하여 같은 미술계통에서도 분야에 따라 두드러진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불교 미술에서도 불교 회화와 공예는 호화롭고 정교하여 아취가 넘치는 경향으로 발전되었지만, 불상이나 불탑은 소수의예를 제외하면 다소 균형이 깨지고 경직된 경향을 띠게 되었다.
포괄적으로 말해서 고려시대의 불상이나 불탑등은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에 비해 수준이 현저하게 저하되었다. 또한 중앙과 지방과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회화
회화는 공민왕 무덤의 벽화와 수락암동 옛 무덤의 사신도, 부석사조사당의 천왕상과 보살, 수덕사 벽화등이 전해진다. 그 밖에 공민왕이 그린것으로 전해지는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가 있는데, 말을 탄 인물과 마른 나무, 풀 등 극도의 사실적인 필치는 웅대하고 품위있는 현세감을 느끼게 한다.
고려시대의 미술 중에서도 회화의 경우에는 인물과 산수는 물론묵죽을 비롯한 문인화 계통의 그림등이 귀족, 화원(畵圓),선승(禪僧)등에 의해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송나라 휘종의 찬사를 받았던 이령(李寧)의 「예성강도」와「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를 위시하여 이제현의 「기마강상도」, 필자 미상의「금강산도」 「진양산수도」「송도팔경도」등이 문헌에 전해지고 있는 것은 이미 고려 전기에 한국적인 실경산수화가 발전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현재 이 시대 회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우수한 일반회화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지금 전해지는 작품으로서 고려시대 회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것은 불교 회화이다. 이 작품들 중에서도 1286년 제작된 「아미타여래입상」, 동경 천초사 소장의 「양류관음상」, 서구방이 1323년에 그린 「수월관음보살도」등은 고려시대 불교회화의 높은 수준과 독특한 성격을 특히 잘 보여준다. 이러한 그림들은 한결같이 금빛과 채색이 찬란하고 의습과 문양이 정교하며 자태가 단아하여 고려적인 특색을 짙게 풍긴다. 고려시대의 전기에는 호국불교가 성행했던 데에 반하여 후기에는 내세의 구원과 행복을 비는 구복신앙과 관련이 깊은 아미타여래, 관세음보살,지장보살등이 널리 신봉되고 또 자주 그려지곤 했다.

도기와 공예
중국에서도 높이 평가되어 그곳에 다량으로 전해지기까지 했던 고려의 불교회화와 함께 이 시대 미술의 경향과 특색을 직접적이고도 강렬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은 역시 순청자(巡靑磁),상감청자(象嵌靑磁), 회청자(繪靑磁)등의 자기이다.
대체로 고려 초기에는 비색이 가장 아름답고 조형감각이 특히 뛰어난 이른바 순청자(純靑磁)가, 중기에는 세계 초유의 상감청자(象嵌靑磁)가, 그리고 후기에는 이밖에 철사(鐵砂) 등으로 그림을 그려 장식하는 회청자(繪靑磁)가 초·중기에 이어 더욱 유행하였다.

건축과 조각
조소는 불교 조각으로 대표되지만 이미 조형의 이상미는 사라졌다.
선종불교에 의한 부처 모시기의 경시, 불상 수요의 감소가 그원인이 되어 이 시대에 와서 불상 조각은 퇴조하였다. 관촉사 미륵불(일명, 은진미륵)과 우리 나라 유일한 소조 작품인부석사의 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건축은 사원을 중심으로 한 불교 건축이 신라시대의 질서정연한비례 감각을 잃고, 잡다하고 뒤섞인 집과 궁전 건립으로 기법이나 외관이 치졸해진다.
대표적인 목조 건물은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조사당, 수덕사의 대웅전, 성불사의 극락전등이 있다. 그 중 부석사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5. 조선시대 (朝鮮時代)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불교를 삼았던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와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숭상하여 그 전까지의 문화와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냈다. 즉, 이 시대를 시종일관 지배했던 억불숭유정책은 당시의 문화를 검소하고 실용적이며 소박한 성격의 것으로 발전하게 했다.
이 점은 미술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교를 숭상한 조선은 불교적이고 귀족적인 성격을 탈피하였다. 사찰 중심의 건축 미술은 궁궐 중심으로, 불교 중심의 회화는 남종화풍의 담담한 화풍으로 변모되었다. 초기에는 안견, 강희안, 이상좌등이, 후기에는 정선, 심사정등의 화가가 전통 회화의 발전에 기여했다. 18세기 이후에는 서민생활을 다룬 풍속화와 민화가 많이 그려졌다.
서민적이고 순박한 조선 미술의 특징은 도자공예, 목죽공예,칠기공예등의 생활용품의 발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조선왕조 시대의 미술은 대체로 고려시대의 귀족적인 정서와는 달리 민족적인 정취를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조선시대의 미술 중에서도 특히 발달했던 것은 회화와 도자 공예및 목칠 공예, 그리고 목조 건축 등이다.

조선시대 회화
이 시대의 미술 중에서도 회화는 우리 나라 미술사상 가장 크게 발전하였다.
건국 초부터 도화원(圖畵圓)이 설치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회화 미술이 꽃피게 되었다. 사대부와 화원들이 이 시대 회화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하였다. 또한 대나무, 산수, 인물, 화초 등 다양한 소재들이 다루어졌으나감상을 위한 산수가 대종을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초상화는 동양의 삼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였다.
인물의 정확한 묘사와 미묘한 정신 세계의 표출은 괄목할 만하다.
조선 시대의 회화는 화풍의 변천에 따라 초기(1392∼약 1550), 중기(약1550∼약 1700), 후기(약 1700∼약 1850), 말기(약 1850∼1910)로나누어지는데 각 시대마다 각기 다른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초기에는 고려시대 회화 및 그 시대에 전래되어 축적되었던 중국 역대의 화풍과 새로이 명으로부터 수용한 화풍등을 토대로, 중국이나 일본의 회화와는 다른 양식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화풍상의 특징은 이 시대작품들의 구도, 공간 개념, 필묵법, 준법등에서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초기에는 세종조의 안견(安堅), 사대부화가 강희안(姜希顔), 그리고 세종대왕의 아들로 당대 최고의 서예가이며 최대의 중국화 소장자이자 안견의 후원자였던 안평대군등이 활동하며 서화의 발전에 크게기여하였다. 이 시기의 그림 중에서도 특히 안견과 그의 추종자들의 작품들에 한국적인특색이 진하게 배여 있다.
안평대군이 꿈속에 도원을 여행하고 꿈에 본 바를 안견에 명하여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1447년 4월에 제작한 것으로 조선시대 최대의 걸작이다.

조선 초기에는 안견뿐만 아니라 사대부 화가로서 명대 절파화풍을 수용하여 대성한 강희안, 인물화의 최대 거장이었던 최경,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타고난 그림 재주 때문에 화원이 되었던 이상좌, 여성으로서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여성적인 「초충도(草蟲圖)」를 비롯하여 다방면의 그림을 그렸던 신사임당, 왕손으로서 천진난만한 강아지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렸던 이암,「달마도(達磨圖)」를 그린 김명국 등이 관심을 끈다.

조선 중기의 회화 역시 임진왜란, 병자호란등의 대란과 격렬한 당쟁이 계속되던 정치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화풍을 이룩하였다. 한편으로는 안견파 화풍, 절파화풍등 조선 초기 이래의 전통을 나름대로 계승, 발전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모나 화조화(花鳥畵), 묵죽(墨竹), 묵매(墨梅),묵포도(墨葡萄)등에서 종래에 보기 드물었던 새로운 한국적 특징을발전시켰다.
김제의「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김명국의「설중귀로도(雪中歸路圖)」,이 정의 「묵죽도(墨竹圖)」등은 이 시대 회화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적 화풍이 더욱 뚜렷한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은 조선 후기이다.
영조와 정조의 재위 연간을 전후하여 꽃피웠던 조선 후기의 회화는 정선에 의해 발전된 진경산수(眞景山水), 김홍도와 신윤복을 중심으로 유행된 풍속화에서 특히 한국적인 특색을 농도 짙게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이시기에는 남종 문인 화풍이 크게 유행하였고 또 청나라를 통해 서양화법이전래되는 등 전과는 다른 경향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밖에 이 시대에는서민들 사이에서 민화가 크게 풍미하였다.
정선의 진경산수는 「금강전도」나「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등에서 보듯이 실제로 우리나라에 있는 산천을 새로운 화풍으로 구사하여 그린 것으로 후대의 화원과 민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정선의 제자였던 심사정은 대담한 필선과 고아한 담채를 혼합한 우수한 기법의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이러한 정선파의 산수화들은 종전의 산수화와는 현저하게 다르며 또한 우리의 국토에 실재하는 산천을 묘사한 것이기에 특히 우리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서민들의 생활의 전경을 주로 해학적으로 묘사한 김홍도와 김득신의 풍속화, 또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로 한량과 기녀등 남녀간의 로맨스를 예리하게 파헤친 신윤복은 「미인도」등으로 풍속화에 더욱 한국적인 멋과 특색이 넘쳐 흐른다.
이처럼 한국적인 화풍이 크게 발달하였던 조선 후기를 거쳐 말기에 이르면, 추사 김정희와 그를 추종하던 화가들에 의해 남종문인화가 확고히 뿌리를 내리게 되고후기의 토속적인 진경산수나 풍속화는 급격히 쇠퇴하게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김정희의 제자로서 호남화단의 기초를다진 소치 허련과 함께 오원 장승업이 배출되어 개성이 강한 화풍을 형성하고 제자들인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 등을 통해 현대 화단으로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게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화풍이 중국적 성향을 강하게 띤 점은 아쉽게 생각된다.

조선시대 도기와 공예
조선 시대의 미술에서 회화와 더불어 한국적인 특색을 두드러지게보여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도자기이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 시대의 청자에서 변천된 분청사기와 희고 고운백자가 크게 발전하였다. 이들 분청 사기는 고려시대의 청자와는 달리 서민적이고 즉흥적이며 소박한 특징을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조선왕조적인 특성이 담뿍 함축되어 있다고하겠다. 이러한 분청사기는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자취를 감추게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종조를 전후한 초기의 백자는 한결같이 균형이 잡히고 때깔이 곱고 단아하며 초기에는 어기로만사용되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차차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 미술의 특색은 이 밖에도 목리(木理)를 최대한 살리고 장식을 가능한 한 피하며 뛰어난 비례미를 보이는 목조가구나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건축 및 자연경관을 돋보이게 하고 인위적인 요소를 최소한으로 제한한 정원등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목죽 공예는 서민생활에 스며든 여러 가지 단순하고 소박한 가구들에서 그 독특한 양식을 자아내고 있다. 이들 목공예품에는 장롱·궤·경대·소반·문갑·탁자·등에 십장생도(十長生圖)나 박쥐무늬, 수복(壽福) 무늬등을 넣었다. 아름다운 목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순박한 의장과 건실한 구조로서구수하고 진실함이 잘 나타나 있다.

조선시대 건축
건축으로는 궁정 건축을 비롯한 성곽·문묘·서원·사원·객사등등 많은 건물이 세워졌다. 그러나 대부분이 임진, 병자의 양란 때 타서 없어지고 지금 남아있는 것은 대개 조선 후기의 건물이다. 조선 시대 건축은 고려시대 건축에 비하여 대개 장식이 번잡해지고 구조가 육중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지붕선의 아름다움, 창살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디자인의 발전은 조선시대 건축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초기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남대문과 개성의 동대문이 있고, 후기를대표하는 것으로는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비원의 연경당이 있다.

Posted by 여름아이

2009/07/02 13:19 2009/07/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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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이야기의 로마석관(3세기말, 로마)

하느님이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 재앙을 알리라고 명하였으나 요나는 도망치려고 배를 탔지만 거센 풍랑이 있어 그치지 않자 사람들은 제비뽑기를 하여 요나를 물 속에 던져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큰 물고기에 삼켜진 요나가 살려달라고 열심히 기도하자 하느님은 그를 살려주며 니느웨로 가게 하였습니다.

요나가 하느님 말씀을 따르자 하느님은 언덕에서 쉬고 있는 그의 자리를 아주까리 잎으로 시원하게 까지 해주었습니다.

믿음에 의한 구원과 부활의 주제는 몇몇 일화를 첨가하고 있습니다.

위 왼쪽에 새겨진 나자로의 부활, 바위를 쳐 물이 솟아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모세 등등. 석관의 가장 오른쪽에 새겨진 낚시하는 장면은 영혼을 낚는 어부인 예수를 상징할 것이며, 그 위에 작은 크기로 새겨진 양치기도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는 선한 목자로서의 예수, 즉 구원자의 모습입니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배치하였던 로마의 역사 부조방식과 사뭇 다릅니다.

풍랑에 흔들리는 배와 요동치는 큰 물고기 그리고 아주까리 그늘 밑의 요나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다른 이야기들은 남는 공간에 하나씩 넣는 듯이 배치하였습니다.

화면 구성의 면에서 서로간의 균형엔 관심이 없으며 조각을 하는 방법에서도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엔 전혀 개의치 않은 듯하다. 인물이나 사물을 배경에서 두드러지게 하고 세부를 깊게 선각으로 처리함으로써 이야기를 분명히 전하는 것에 관심을 쏟은 듯합니다.

Posted by 여름아이

2009/07/02 13:19 2009/07/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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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한국미술

1. 고대(古代)

1.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은 대체로 요서, 만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에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부터이며,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를 거치는 사이에 민족의 기틀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자연물에 영혼이 깃들여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 사상에서 자연숭배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정 동물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신앙을 바탕으로 예술 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특히 토기는 표면에 색채를 발라서 갈거나, 점·선·원과 같은 단순한 기하학적무늬를 압각(押刻)하였다. 기교적으로는 세련된 형태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부터 농경생활이 시작되었다. 농경 도구나 토기의 제작이외에 원시적인 수공업 생산도 이루어졌다. 신석기 시대의 미술품으로는 우선 '빗살무늬토기'를 들
수 있다. 약간 배가 부른 V자 모양의 토기 표면에 평행으로 사선을 그어서 장식을 하였는데, 선의 방향을 줄에 따라서 엇갈리게 하기도 하였다. 가지런한 선은 서로 대칭을 이루고 통일된 조화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토기의 무늬는 단순히 미적인 것이 아니라 주술적 의미가 강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이 시대의 미술품은 주로 흙으로 빚어 구운 얼굴 모습이나동물의 모양을 새긴 조각품, 조개 껍데기 가면, 조가비로 만든치레걸이, 짐승의 뼈나 이빨로 만든 장신구 등이 있었다.

3. 철기 시대
청동기를 사용하고 농사가 발달하면서 평등했던 부족사회는 무너지고, 사유 재산이 축적되고 계급이 발생하면서 예술이 함께 발전하였다.
이 시기의 예술은 종교 및 정치적 요구와 밀착되어 있었다. 그것은 당시 제사장이나 군장들이 사용하였던 칼, 거울, 방패등의 청동제품이나 토제품, 바위 그림등에 반영되어 있다. 또 지배층의 무덤인 돌널무덤등에서 출토된 청동제 의기들은 말이나 호랑이, 사슴, 사람 손 모양등을 사실적으로 조각하거나 기하학 무늬를 정교하게 새겨 놓았다. 이들은 주술적 의미를 가진것으로, 어떤 의식을 행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흙으로 빚은 짐승이나 사람 모양의 토우(土偶) 역시 장식으로서의 용도 외에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바위면을 쪼아새긴 바위 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활기에 찬 생활상을 보여주고있다.
이 시대 미술품으로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암각화(岩刻畵)이다. 울산의 반구대 바위 그림에는 거북, 사슴,호랑이, 새 등의 동물과 작살이 꽂힌 고래, 그물에 걸린 동물, 우리안의 동물 등 여러 가지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사냥과 물고기잡이의 성공과 풍성한 수확을 비는 염원의 표현으로 보인다.



2. 삼국시대 (三國時代)

삼국시대에는 또한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가 전래되어 우리나라의 미술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특히 불교와 도교가 이 시대미술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불교의 발전과 함께 사상적 내용이 풍부해지고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높은 미의 감각을 엿볼 수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1. 고구려 시대
고구려는 19대 광개토대왕 시대에 만주 통구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강력한 국가를 형성하였다. 광대한 지리적 풍토와 외세의 영향을 받아 길러진 늠름하고도 분방하며 용맹스러운 고구려인의 기상은 그대로 미술에 반영되어 어느 나라의 미술보다도 힘과 정열이 넘쳤다.
고구려의 고분에는 돌무지 무덤과 굴식 돌방 무덤이 있다. 초기에는 주로 돌무지 무덤이 만들어졌으나 점차 굴식 돌방 무덤이주류를 이루었다. 돌무지 무덤으로는 장군총이 유명한데, 계단식으로 화강암을7층으로 쌓아올렸다. 굴식 돌방 무덤 내부에는 벽화가 있기도 하여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굴식 돌방 무덤은흙으로 덮은 봉토 내부에 굴식 돌방이 있는 것으로 쌍영총, 무용총,강서 고분등이 유명하다. 여기에는 풍속도, 수렵도, 무용도,사신도등이 그려져 있어 고구려인의 강건하고 남성적인 기질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무용총의 수렵도는 이러한 사실을 잘 입증해 준다.
그림의 주제는 주로 영생사상을 반영해 주는 죽은 사람의 생활기록이 가장 많다. 선이 굵고 강직하며 주제를 상징적이고 박력있게 다루어 대담하고 웅혼한 고구려인의 대륙적 기상을보여준다.
고구려 미술의 특색은 회화 못지않게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 (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을 비롯하여 불상들의 나부끼는 옷자락이나 화염문등에도 잘 나타나 있다.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 (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은 두꺼운 법의를 입어 몸이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신비하면서도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다. 공예는 통구와 평양 지방에서 나온 기와와 벽돌에 새겨진 장식 무늬에서 힘찬 고구려인의 기상과 솜씨를 알 수 있다.

2. 백제 시대
백제는 부여족의 일파가 한반도의 서남부로 이동하여 옛 삼한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백제의 미술은 북방적인 성격을 가진 원래의 전통에 중국과의 해상교통이 발달되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고구려의 영향에서 벗어나 높은 문화 수준을 유지하였다. 불교미술과 중국의 남조 문화를 흡수하여 온화하고 우아하며 향토적인 색채의 아름다운 미술을 발전시켰다. 백제의 미술은 매우 부드럽고 모나지 않으며 인간미가 넘치고 세련되었다. 이러한 특색은 5세기부터 7세기 중엽까지의 고분벽화,불상, 와당을 비롯한 공예품, 탑등의 미술 전반에 걸쳐 볼 수 있다.
백제의 회화는 능산리고분(陵山理古墳)의 비운문(飛雲文)과연화문(蓮華文)에서 볼 수 있듯이 부드럽고 완만한 움직임의느낌을 자아낸다. 백제의 회화는 6세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회화에 영향을미친다.
이렇게 부드럽고 인간미가 넘치는 백제 미술의 특징은 불상에서도 드러난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양식적인 면에서 외래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들의 얼굴은 복스럽고 밝은 웃음으로 가득차 있어 '백제의 미소'라 불리운다. 부여 군수리 절터에서 발견된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과 말기의 대표작 금동관세음보살상(金銅觀世音菩薩像)은 그 기법이 고졸(古拙)하며 백제의 온화함에 중국 남북조의 영향이 가미되어 있다.
공주 송산리의 무령왕릉은 무령왕에 대한 기록인 지석과 함께 금제관식, 무기, 그릇, 구리 거울 등 많은 껴묻거리가 발견되어 당시의발전된 공예 미술을 보여준다. 최근에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백제 금동 대향로도 도교와 불교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 훌륭한 공예품이다.
건축에 있어서는 오늘날 전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백제의 공장들이 신라의 황룡사 9층탑과 일본의 법륭사, 사천왕사, 법륜사등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 건축에서 백제시대 절의 건축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석탑으로는 목조탑의 건축 양식을 모방한 초기 양식의 익산미륵사지 석탑과, 균형이 잡힌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고 있는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이 있다. 미륵사지 탑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석탑으로서 9층이며, 우리나라 탑 건축의 원류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3. 신라 시대
한반도의 남동부를 차지한 신라는 비교적 평화롭고 안정된 지역적조건 밑에서 독자적인 미술문화를 이루었다. 신라의 미술은 조화있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신라의 미술은 중국의 남조 문화와 고구려, 백제등과 접촉하면서 화려하고 다양한 문화를 이룩하였다. 특히 5세기 후반에 전래된 불교의 영향으로 더욱 화려하고 독특한종교문화를 이룩하였으며 고분의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들에서 당시의 뛰어난 공예 예술을 엿볼 수 있다. 신라의 미술은 전체적으로 보면 이웃했던 고구려나 백제의 미술과는 달리 엄격하고 추상적이며 사변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신라의 회화는 경주의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발굴되기까지는 거의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고분들에서 출토된 천마도(天馬圖),기마인물도(騎馬人物圖), 서조도(瑞鳥圖), 우마도(牛馬圖)등을통해서 우리는 신라 회화의 뛰어남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그림들은 모두 화원의 작품이기보다는 공장에 의한 공예화였다.
불교 미술은 삼국 중에서 신라가 가장 늦게 시작하였으나, 이미6세기 후반에는 특유의 전통을 확립하였다. 7세기에 들어서면서 신라의 불상은 삼화령미륵삼존석불(三化嶺彌勒三尊石佛)이나 황룡사지 출토의금동보살두(金銅菩薩頭)에서 처럼 밝은 표정을 보이지만 몸의비례나 옷의 처리등에는 여전히 추상성이 감돌고 있다.
신라 미술의 일반적인 경향은 대개가 매우 정교하고 호화로우며 또 간혹 현대적인 감각을 풍겨주기도 한다. 금속 공예나 유리 공예와는 대조적으로 토기는 다소 조방하고 거칠며 문양은 기하학적이거나 추상적이다. 그러나 기마 인물형 토기에서 볼 수 있듯이 조형성이 뛰어난 특성도 보여준다. 이 밖에도 삼국시대에는 가야도 높은 수준의 미술을 발전시켰음이 금속공예나 이형토기(異形土器)등을 통해 확인된다. 고령지산동에서 출토된 금관이나 기마인물형토기 등을 예로 봐도 이를확인할 수 있다.



4. 통일신라시대의 미술

(1)통일신라
①고유의 전통 문화에 당나라의 문화를 흡수, 소화하여 우리 나라 미술사상 황금기를 이룩하였다.
②불교는 신라의 호국 사상과 일치되어, 불교 중심의 미술이 발달하였다.
③섬세하고 화려하며, 독자적인 정교한 양식을 확립했다.
④사찰과 석탑 등 불교와 관련된 조형품이 많이 제작되었으며, 특히 불국사와 석굴암은 조형상의 구성미가 뛰어난 걸작이다.
⑤금관이나 장신구 등의 정교한 금속 공예와 함께, 상원사와 봉덕사의 범종들은 조형미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2)조각
①석굴암 본존상: 석굴암 중앙에 안치되어 있는 본존상은 높이가 3m이고, 우리 나라 석조 불상 중 으뜸가는 것으로 세계의 자랑거리이다. 이 본존상을 중심으로 주위의 돌 벽에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와 보살, 11관음 등을 부조로 조각하여 배열하였다. 전실(前室)에는 금강역사상과 천왕(天王)이 역시 부조로 힘차게 표현되어 있다. 그 솜씨는 극히 우아하고 날카로우며, 알맞은 양감과 부드러운 질감이 조화된 신라 문화의 대표적인 미술품이다. 석굴암은 중국의 윈강 석굴의 영향을 받아서 화강암으로 축조되었다.
②금동 약사여래 입상(金銅藥師如來立像): 성덕왕 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순금 여래 좌상과 더불어 금속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③아미타 여래 입상: 경주 갑산사에 있으며, 높이는 1.8m이다.

(3)건축
①불국사: 경덕왕 10년에 김대성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목조 건물은 임진왜란 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와 함께 돌로 만든 것만 볼 수 있어 옛 모습을 찾을 수는 없으나, 다보탑과 석가탑, 여러 가람들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안정되고 세련된 통일 신라의 미술 역량을 잘 나타내고 있다.
②석굴암: 불국사와 함께 건립된 인공 석굴로, 석가여래좌상, 관음보살상, 나한상, 인왕상 등이 있다.
③다보탑: 곡선과 직선을 잘 조화시켜 구성했으며, 화려한 변화와 안정성이 있는, 통일 신라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④석가탑: 다보탑의 부드러운 곡선미에 대조를 이룬 직선적인 탑으로, 단순하고 힘차며 안정성이 있는, 통일 신라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인데, 사리탑으로 일명 "무영탑"이라고도 한다.
⑤그밖에 화엄사 사리탑, 감은사 3층 석탑 등이 있다.


3. 발해시대 (渤海時代)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으로 이루어졌던 발해에서도 회화, 조각,공예, 건축등 다방면의 미술이 발전했다. 발해 시대의 지상 건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유적의 발굴로 그웅장함이 확인된다.
발해의 자기는 대체로 무게가 가볍고 광택이 있는데, 그 종류나크기, 형태, 색깔등이 매우 다양하다. 특히 발해의 자기는 같은 시대 여러 나라의 도자기 공예보다 독특하게 발전되었으며, 당에 수출하기도 했다. 발해의 미술은 대체로 고구려 미술의 전통을 계승하고 당나라문화의 영향을 수용하여 그 나름의 미술을 발전시켰다고 볼 수있으나, 그에 대한 구체적인 규명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4. 고려시대 (渤海時代)

신라의 미술을 계승한 고려의 미술은 불교미술의 발달과 송나라미술의 영향으로 섬세하고 정교한 귀족적인 미술문화를 남겼다. 이 시기에도 여전히 불교가 융성하였고 이에 따라 각 방면의 불교미술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거란·여진·몽고등 북방 민족들의 잇단 침략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문화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고려가 북송(北宋), 남송(南宋), 원(元), 명(明)등 중국의왕조들과 문화적 교류를 빈번히 하면서 미술 양식을 수용하여 자체의 미술을 발전시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려시대의 모든 미술이 시종 완벽을 지향했던 것으로 단언하기는 어려울 지 모르나 이 시대 미술의 주된 경향은 역시 귀족적 문화를구현하는데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 시대에는 도자기, 칠기, 금속등의 공예가 발달하였고, 특히 상감청자의 독특한 기법은 세계적인 가치를 지니며, 회화 역시 다양한 기법과 양식의 불화가 제작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삼국시대, 통일신라 시대와 비교하여 같은 미술계통에서도 분야에 따라 두드러진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불교 미술에서도 불교 회화와 공예는 호화롭고 정교하여 아취가 넘치는 경향으로 발전되었지만, 불상이나 불탑은 소수의예를 제외하면 다소 균형이 깨지고 경직된 경향을 띠게 되었다.
포괄적으로 말해서 고려시대의 불상이나 불탑등은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에 비해 수준이 현저하게 저하되었다. 또한 중앙과 지방과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회화
회화는 공민왕 무덤의 벽화와 수락암동 옛 무덤의 사신도, 부석사조사당의 천왕상과 보살, 수덕사 벽화등이 전해진다. 그 밖에 공민왕이 그린것으로 전해지는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가 있는데, 말을 탄 인물과 마른 나무, 풀 등 극도의 사실적인 필치는 웅대하고 품위있는 현세감을 느끼게 한다.
고려시대의 미술 중에서도 회화의 경우에는 인물과 산수는 물론묵죽을 비롯한 문인화 계통의 그림등이 귀족, 화원(畵圓),선승(禪僧)등에 의해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송나라 휘종의 찬사를 받았던 이령(李寧)의 「예성강도」와「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를 위시하여 이제현의 「기마강상도」, 필자 미상의「금강산도」 「진양산수도」「송도팔경도」등이 문헌에 전해지고 있는 것은 이미 고려 전기에 한국적인 실경산수화가 발전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현재 이 시대 회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우수한 일반회화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지금 전해지는 작품으로서 고려시대 회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것은 불교 회화이다. 이 작품들 중에서도 1286년 제작된 「아미타여래입상」, 동경 천초사 소장의 「양류관음상」, 서구방이 1323년에 그린 「수월관음보살도」등은 고려시대 불교회화의 높은 수준과 독특한 성격을 특히 잘 보여준다. 이러한 그림들은 한결같이 금빛과 채색이 찬란하고 의습과 문양이 정교하며 자태가 단아하여 고려적인 특색을 짙게 풍긴다. 고려시대의 전기에는 호국불교가 성행했던 데에 반하여 후기에는 내세의 구원과 행복을 비는 구복신앙과 관련이 깊은 아미타여래, 관세음보살,지장보살등이 널리 신봉되고 또 자주 그려지곤 했다.

도기와 공예
중국에서도 높이 평가되어 그곳에 다량으로 전해지기까지 했던 고려의 불교회화와 함께 이 시대 미술의 경향과 특색을 직접적이고도 강렬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은 역시 순청자(巡靑磁),상감청자(象嵌靑磁), 회청자(繪靑磁)등의 자기이다.
대체로 고려 초기에는 비색이 가장 아름답고 조형감각이 특히 뛰어난 이른바 순청자(純靑磁)가, 중기에는 세계 초유의 상감청자(象嵌靑磁)가, 그리고 후기에는 이밖에 철사(鐵砂) 등으로 그림을 그려 장식하는 회청자(繪靑磁)가 초·중기에 이어 더욱 유행하였다.

건축과 조각
조소는 불교 조각으로 대표되지만 이미 조형의 이상미는 사라졌다.
선종불교에 의한 부처 모시기의 경시, 불상 수요의 감소가 그원인이 되어 이 시대에 와서 불상 조각은 퇴조하였다. 관촉사 미륵불(일명, 은진미륵)과 우리 나라 유일한 소조 작품인부석사의 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건축은 사원을 중심으로 한 불교 건축이 신라시대의 질서정연한비례 감각을 잃고, 잡다하고 뒤섞인 집과 궁전 건립으로 기법이나 외관이 치졸해진다.
대표적인 목조 건물은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조사당, 수덕사의 대웅전, 성불사의 극락전등이 있다. 그 중 부석사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5. 조선시대 (朝鮮時代)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불교를 삼았던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와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숭상하여 그 전까지의 문화와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냈다. 즉, 이 시대를 시종일관 지배했던 억불숭유정책은 당시의 문화를 검소하고 실용적이며 소박한 성격의 것으로 발전하게 했다.
이 점은 미술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교를 숭상한 조선은 불교적이고 귀족적인 성격을 탈피하였다. 사찰 중심의 건축 미술은 궁궐 중심으로, 불교 중심의 회화는 남종화풍의 담담한 화풍으로 변모되었다. 초기에는 안견, 강희안, 이상좌등이, 후기에는 정선, 심사정등의 화가가 전통 회화의 발전에 기여했다. 18세기 이후에는 서민생활을 다룬 풍속화와 민화가 많이 그려졌다.
서민적이고 순박한 조선 미술의 특징은 도자공예, 목죽공예,칠기공예등의 생활용품의 발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조선왕조 시대의 미술은 대체로 고려시대의 귀족적인 정서와는 달리 민족적인 정취를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조선시대의 미술 중에서도 특히 발달했던 것은 회화와 도자 공예및 목칠 공예, 그리고 목조 건축 등이다.

조선시대 회화
이 시대의 미술 중에서도 회화는 우리 나라 미술사상 가장 크게 발전하였다.
건국 초부터 도화원(圖畵圓)이 설치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회화 미술이 꽃피게 되었다. 사대부와 화원들이 이 시대 회화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하였다. 또한 대나무, 산수, 인물, 화초 등 다양한 소재들이 다루어졌으나감상을 위한 산수가 대종을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초상화는 동양의 삼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였다.
인물의 정확한 묘사와 미묘한 정신 세계의 표출은 괄목할 만하다.
조선 시대의 회화는 화풍의 변천에 따라 초기(1392∼약 1550), 중기(약1550∼약 1700), 후기(약 1700∼약 1850), 말기(약 1850∼1910)로나누어지는데 각 시대마다 각기 다른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초기에는 고려시대 회화 및 그 시대에 전래되어 축적되었던 중국 역대의 화풍과 새로이 명으로부터 수용한 화풍등을 토대로, 중국이나 일본의 회화와는 다른 양식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화풍상의 특징은 이 시대작품들의 구도, 공간 개념, 필묵법, 준법등에서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초기에는 세종조의 안견(安堅), 사대부화가 강희안(姜希顔), 그리고 세종대왕의 아들로 당대 최고의 서예가이며 최대의 중국화 소장자이자 안견의 후원자였던 안평대군등이 활동하며 서화의 발전에 크게기여하였다. 이 시기의 그림 중에서도 특히 안견과 그의 추종자들의 작품들에 한국적인특색이 진하게 배여 있다.
안평대군이 꿈속에 도원을 여행하고 꿈에 본 바를 안견에 명하여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1447년 4월에 제작한 것으로 조선시대 최대의 걸작이다.

조선 초기에는 안견뿐만 아니라 사대부 화가로서 명대 절파화풍을 수용하여 대성한 강희안, 인물화의 최대 거장이었던 최경,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타고난 그림 재주 때문에 화원이 되었던 이상좌, 여성으로서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여성적인 「초충도(草蟲圖)」를 비롯하여 다방면의 그림을 그렸던 신사임당, 왕손으로서 천진난만한 강아지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렸던 이암,「달마도(達磨圖)」를 그린 김명국 등이 관심을 끈다.

조선 중기의 회화 역시 임진왜란, 병자호란등의 대란과 격렬한 당쟁이 계속되던 정치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화풍을 이룩하였다. 한편으로는 안견파 화풍, 절파화풍등 조선 초기 이래의 전통을 나름대로 계승, 발전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모나 화조화(花鳥畵), 묵죽(墨竹), 묵매(墨梅),묵포도(墨葡萄)등에서 종래에 보기 드물었던 새로운 한국적 특징을발전시켰다.
김제의「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김명국의「설중귀로도(雪中歸路圖)」,이 정의 「묵죽도(墨竹圖)」등은 이 시대 회화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적 화풍이 더욱 뚜렷한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은 조선 후기이다.
영조와 정조의 재위 연간을 전후하여 꽃피웠던 조선 후기의 회화는 정선에 의해 발전된 진경산수(眞景山水), 김홍도와 신윤복을 중심으로 유행된 풍속화에서 특히 한국적인 특색을 농도 짙게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이시기에는 남종 문인 화풍이 크게 유행하였고 또 청나라를 통해 서양화법이전래되는 등 전과는 다른 경향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밖에 이 시대에는서민들 사이에서 민화가 크게 풍미하였다.
정선의 진경산수는 「금강전도」나「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등에서 보듯이 실제로 우리나라에 있는 산천을 새로운 화풍으로 구사하여 그린 것으로 후대의 화원과 민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정선의 제자였던 심사정은 대담한 필선과 고아한 담채를 혼합한 우수한 기법의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이러한 정선파의 산수화들은 종전의 산수화와는 현저하게 다르며 또한 우리의 국토에 실재하는 산천을 묘사한 것이기에 특히 우리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서민들의 생활의 전경을 주로 해학적으로 묘사한 김홍도와 김득신의 풍속화, 또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로 한량과 기녀등 남녀간의 로맨스를 예리하게 파헤친 신윤복은 「미인도」등으로 풍속화에 더욱 한국적인 멋과 특색이 넘쳐 흐른다.
이처럼 한국적인 화풍이 크게 발달하였던 조선 후기를 거쳐 말기에 이르면, 추사 김정희와 그를 추종하던 화가들에 의해 남종문인화가 확고히 뿌리를 내리게 되고후기의 토속적인 진경산수나 풍속화는 급격히 쇠퇴하게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김정희의 제자로서 호남화단의 기초를다진 소치 허련과 함께 오원 장승업이 배출되어 개성이 강한 화풍을 형성하고 제자들인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 등을 통해 현대 화단으로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게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화풍이 중국적 성향을 강하게 띤 점은 아쉽게 생각된다.

조선시대 도기와 공예
조선 시대의 미술에서 회화와 더불어 한국적인 특색을 두드러지게보여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도자기이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 시대의 청자에서 변천된 분청사기와 희고 고운백자가 크게 발전하였다. 이들 분청 사기는 고려시대의 청자와는 달리 서민적이고 즉흥적이며 소박한 특징을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조선왕조적인 특성이 담뿍 함축되어 있다고하겠다. 이러한 분청사기는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자취를 감추게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종조를 전후한 초기의 백자는 한결같이 균형이 잡히고 때깔이 곱고 단아하며 초기에는 어기로만사용되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차차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 미술의 특색은 이 밖에도 목리(木理)를 최대한 살리고 장식을 가능한 한 피하며 뛰어난 비례미를 보이는 목조가구나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건축 및 자연경관을 돋보이게 하고 인위적인 요소를 최소한으로 제한한 정원등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목죽 공예는 서민생활에 스며든 여러 가지 단순하고 소박한 가구들에서 그 독특한 양식을 자아내고 있다. 이들 목공예품에는 장롱·궤·경대·소반·문갑·탁자·등에 십장생도(十長生圖)나 박쥐무늬, 수복(壽福) 무늬등을 넣었다. 아름다운 목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순박한 의장과 건실한 구조로서구수하고 진실함이 잘 나타나 있다.

조선시대 건축
건축으로는 궁정 건축을 비롯한 성곽·문묘·서원·사원·객사등등 많은 건물이 세워졌다. 그러나 대부분이 임진, 병자의 양란 때 타서 없어지고 지금 남아있는 것은 대개 조선 후기의 건물이다. 조선 시대 건축은 고려시대 건축에 비하여 대개 장식이 번잡해지고 구조가 육중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지붕선의 아름다움, 창살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디자인의 발전은 조선시대 건축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초기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남대문과 개성의 동대문이 있고, 후기를대표하는 것으로는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비원의 연경당이 있다.

Posted by 여름아이

2009/07/02 13:19 2009/07/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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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미술과 서양미술의 차이점....

+한국 미술의 특징

모든 미술 작품이 작가의 사상, 생활, 감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한 나라의 미술은 그 민족의 민족성, 역사,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일찍부터 대륙문화와의 교류를 통해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워 온 우리 민족은 자연 환경과의 조화 속에서 소박하고 창의성있는 조형세계를 이루어 왔다. 그러므로 우리 미술은 우리 민족의 생활 정서와 감정이 솔직하고 수수하게 표현되어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부드러움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담담하고 조용하여 다소곳한 미덕을 장점으로 하는 미술이다. 우리 나라의 미술은 선사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 현대 등으로 구분된다. 선사시대의 미술은 조형성, 구체성보다는 평면과 선에 의존하면서 추상주의적 양식을 따르고 있었다. 선사시대에서 시작된 기하학적 무늬는 신라 토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원래는 북방적 추상양식 전통에서 출발하고 있으나 삼국시대로 들어가면서 우리 나라 미술은 자연주의 양식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그것이 우리 민족의 자연에 대한 사랑, 자연에의 의존심에 뒷받침되어 우리 나라 미술 특유의 평화롭고 인간미 있고 인공의 가식이 없는 순수한 자연의 미를 나타내려는 한국적 미술양식을 형성해 나갔다.

중국의 미술은 양과 형을 강조하였으며 일본의 미술은 색체를 강조한 미술적 특징이 있는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유려한 곡선미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색채학적 특징으로는 은근하고 청초한 빛깔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밝은 명색조(흰색)의 색채를 즐겨 사용하였으며 백색지향적인 명색조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작태도로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솜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흔희 말하는 '무기교의 기교'는 우리나라가 구태여 기교를 부리기 보다는 자연이 주는 재료적인 특징을 최대한 살려표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각 시대별로도 시대적 특징과 어울려 깊이 스며들어 전체적인 우리나라만이 가지는 조형적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통미술의 계승은 단순히 전통미술을 재현하거나 또는 무조건적인 추종, 부정의 대상이 아니며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으로 과거의 조형가치를 다시 생각하여 지금의 미술적 가치관에 알맞게 재창조하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서양미술의 특징은


서양 미술은 구석기 시대 ,신석기시대,그리이스 미술,중세의 회화중세 말엽 ~ 르네상스 바로크 . 로코코양식,19세기 미술,20세기 미술,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초 현실주의,순수 주의),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액션 페인팅,추상 표현주의,드립 페인팅,팝 아트,테크놀로지 아트 비데오 아트,미니멀 아트,개념 미술)등으로 구분된다. 서양화에는 서양사람들의 생각과 역사가 녹아있게 마련이다. 동양화는 선과 묵의 농담을 통해 주로 이상향이나 정신세계를 표현해왔다면 서양화는 색깔과 조형미를 중요시해 왔다. 바로 눈으로 보이는 현실세계다. 르네상스 이후 ‘사람이 만물의 척도’라고 생각한 것과 무관치 않다. 초상화에서는 인물의 특징을, 정물화에서는 구도와 함께 오감을 자극하는 사물에 대한 대상을, 풍경화에서는 기독교 사상이 배어 있는 이상향이나 아름다운 전원에 대한 그림을 그린것이 특징이다.

1. 재료의 차이

서양과 한국전통의 미술작품은 일단 재료에서 차이가 납니다. 르네상스의 서양회화는 템페라화로 대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료를 달걀흰자로 녹여서(용매라고 하죠) 벽에 침투시키는 방식입니다. 이후에는 유화가 개발되었죠. 용매로 기름을 사용해서 캔버스(천)에 유성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입니다. 한국전통의 미술도구는 지필묵이었습니다. 한지에 먹으로 그리고 채색을 했지요. 서양과는 달리 수용성의 안료를 사용했습니다.

2. 기법의 차이

서양의 회화에서 투시원근법 외에도 공기원근법을 사용했습니다.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요. (스푸마토기법이라고도 하는데 아른하게 배경을 처리하는 방법이요)우리나라 전통회화의 원근법은 삼원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경-중경-원경, 이렇게 화폭의 공간을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3. 주제와 소재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주제와 소재가 화폭에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주로 다루어졌던 소재는 차이가 있겠지요. 서양화에서 채택된 주제는 아무래도 기독교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예수나 성자의 일생, 종교적인 환희와 같은 이야기가 많이 그려졌습니다. (물론 한국화에서도 종교적인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불화,탱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화는 일단 산수화를 꼽을 수 있겠지요.
서양에서 풍경화가 독립적인 소재로 등장한 때는 18세기 정도 그 이후였는 데 반해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연의 풍경을 그려왔습니다. 정물화 같은 경우에는 동서양에서 많이 제작되었지요. 동양화에서는 기명절지화라고 부릅니다.

Posted by 여름아이

2009/07/02 13:19 2009/07/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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